글
더 버는 30만원과 덜 쓰는 30만원은 같은 30만원이 아니에요
수익률 가정을 7%에서 10%로 올리면 은퇴가 1.8년 당겨져요. 월 지출을 30만원 줄여도 정확히 1.8년이 당겨지고요. 그런데 소득을 30만원 늘리면 0.7년뿐이에요. 지출만 저축과 목표액 양쪽을 동시에 밀기 때문인데, 그 차이를 실제 계산으로 보여드릴게요.
FIRE 계산기를 열어놓고 가장 많이 만지는 칸은 수익률이에요. 7%를 넣으면 은퇴가 멀어 보이니까 8%로 올려보고, 그래도 아쉬우면 10%를 넣어보죠.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런데 그 칸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값이 아니에요. 시장이 정하는 값을 내가 적어 넣는 자리일 뿐이죠. 반대로 바로 위에 있는 지출 칸은 온전히 내 것이고, 게다가 계산 안에서 두 번 일을 해요. 이 글은 그 두 번이 실제로 몇 년을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같은 1.8년, 다른 성격
한 사람을 정해놓고 볼게요. 연소득 6,000만원, 월 지출 250만원, 지금까지 모은 자산 1억원. 목표는 연 지출의 25배인 7억 5천만원이에요. 4% 룰에서 나온 숫자죠. 수익률은 연 7%, 변동성은 15%로 두고, 1,000개 경로를 돌려 중앙값이 목표에 닿는 시점을 봤어요.
| 바꾼 것 | 목표액 | 도달까지 |
|---|---|---|
| 기준 | 7.5억 | 11.6년 |
| 수익률을 7% → 10%로 | 7.5억 | 9.8년 |
| 월 지출을 250 → 220만원으로 | 6.6억 | 9.8년 |
| 월 지출을 250 → 200만원으로 | 6.0억 | 8.6년 |
| 소득만 월 30만원 늘리기 | 7.5억 | 10.9년 |
수익률을 3%p 올린 결과와 지출을 30만원 줄인 결과가 똑같이 9.8년이에요. 앞의 3%p는 장기 주식 기대수익률을 통째로 갈아치우는 수준의 가정이고, 뒤의 30만원은 이번 달부터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왜 지출만 두 번 일하나
표의 마지막 줄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에요. 소득을 월 30만원 늘려서 그대로 저축해도 0.7년밖에 못 당겨요. 지출을 30만원 줄이면 1.8년이고요. 같은 30만원인데 2.6배 차이가 나요.
저축액만 보면 둘은 완전히 같아요. 매달 280만원씩 쌓이죠. 갈리는 건 도착점이에요.
- 더 벌기는 통장에 들어오는 속도만 바꿔요. 목표는 7억 5천만원 그대로예요.
- 덜 쓰기는 속도를 똑같이 바꾸면서, 목표선을 앞으로 끌어당겨요. 연 지출이 360만원 줄었으니 25배인 9,000만원만큼 목표가 낮아져요.
한 번 줄인 지출은 은퇴 후에도 계속 줄어 있는 지출이거든요. 그래서 목표액에 25배로 곱해져 들어가요. 소득은 은퇴하는 순간 사라지니까 목표액에 아무 영향이 없고요. 계산기가 지출 칸 하나로 저축과 목표를 동시에 계산하는 건 이 비대칭 때문이에요.
수익률 칸이 위험한 이유
수익률을 높게 적는 게 나쁜 건, 그 숫자가 틀릴 수 있어서만은 아니에요. 틀렸을 때 손해가 대칭이 아니라서예요.
기대수익률을 3%p 낙관하면 11.6년짜리 계획이 9.8년으로 보여요. 2년 가까이 일찍 그만둘 수 있다고 믿고 그에 맞춰 준비하게 되죠. 그런데 시장이 그 낙관을 맞춰주지 않으면 잃는 건 2년이 아니에요. 목표에 못 닿은 채로 인출을 시작하면 남은 자산이 시장 하락과 인출에 동시에 깎이거든요. 게다가 변동성이 있는 한 평균 수익률과 실제 손에 남는 돈은 애초에 같지 않아요. 왜 그런지는 평균 수익률이 실제 번 돈을 과대포장하는 방식에 따로 정리해뒀어요.
반대로 지출을 30만원 줄인 계획은 시장이 어떻게 나오든 그 30만원만큼은 지켜져요. 통제할 수 있는 변수로 세운 계획과 통제할 수 없는 변수로 세운 계획의 차이예요.
이 계산이 말하지 않는 것
정직하게 밝혀둘 게 몇 가지 있어요.
세금과 인플레이션은 안 들어가 있어요. 목표 7억 5천만원은 오늘의 구매력으로 말한 금액이고, 인출할 때 내는 세금도 계산 밖이에요. 둘 다 실제로는 목표를 더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해요.
지출을 줄인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고 가정했어요. 사실 이 글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여기예요. 수익률 칸을 10%로 고치는 데는 1초가 걸리지만, 월 30만원을 10년 동안 계속 덜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니까요. 계산이 쉽다고 실행이 쉬운 건 아니에요.
저축률 50%는 이미 상당히 높은 출발점이에요. 위 사람은 버는 돈의 절반을 모으고 있어요. 저축률이 이보다 낮으면 지출 30만원의 비중이 커져서 효과는 더 커지고, 도달 연수 자체는 훨씬 길어져요.
변동성은 15%로 고정했어요. 1,000개 경로는 이 값을 기준으로 흩어진 결과예요. 실제 포트폴리오가 이보다 출렁이면 같은 기대수익률이라도 범위가 넓어져요.
그래서
수익률 칸은 예측이고 지출 칸은 결정이에요. 계산기를 열었을 때 만질 곳은 결정 쪽이에요.
FIRE 계산기에 본인 소득과 지출을 넣어보세요. 로그인 없이 브라우저 안에서 1,000개 경로를 돌리고, 수익률 가정을 ±3%p 흔들었을 때 도달 시점이 얼마나 움직이는지도 같이 보여줘요. 지출 칸을 30만원 내려보고 그 숫자가 얼마나 움직이는지 확인해보시면, 이 글이 왜 필요했는지가 한 줄로 보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