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AI에게 투자 결정을 맡기면 안 되는 이유, 그래서 만든 것
AI 투자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어보려다 반대 결론에 도달했어요. 투자 결정은 현재 정보의 추론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베팅이고, LLM은 구조적으로 그 일에 맞지 않아요. 퀀트가 오래 겪은 함정이 왜 AI 에이전트에서 더 나쁜 조건으로 반복되는지, 그리고 지금 기술 수준에서 AI가 투자에 실제로 잘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요.
요즘 "AI 투자 에이전트"가 많이 나와요. 알아서 종목 고르고, 알아서 사고팔아준다는 것들이요. 데모는 하나같이 그럴듯해요. 뉴스를 읽고, 차트를 보고, 확신에 찬 문장으로 매수 사유를 뽑아내죠.
그런데 이런 걸 직접 만들어보려다가 오히려 반대 결론에 도달했어요. AI한테 투자 결정을 통째로 맡기는 건 아직 일러요. 기술이 조금 부족해서가 아니라, 문제의 구조가 안 맞아서요.
투자 결정은 현재 정보의 함수가 아니에요
투자 결정이라는 게 지금 손에 있는 정보만으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여러 갈래의 정보를 종합한 인사이트 위에, 그 종목과 미래에 대한 개인의 믿음과 기대치가 섞여서 나와요.
테슬라를 사는 사람을 생각해볼게요. 지금의 재무제표만 보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자율주행이 언젠가 열릴 거라는 믿음, 그 시장에서 이 회사가 이길 거라는 기대에 베팅하는 거예요. 그 믿음은 현재 데이터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아요. 같은 재무제표를 보고 누군가는 사고 누군가는 팔아요. 둘 다 합리적일 수 있어요. 서로 다른 미래를 믿고 있을 뿐이죠.
반면 LLM은 기본적으로 지금 손에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추론하는 기계예요. 훈련 데이터와 컨텍스트에 있는 것들을 종합해서 가장 그럴듯한 다음 문장을 만들어요. 이건 굉장히 유용한 능력인데, 미래에 대한 베팅과는 다른 종류의 일이에요. 미래 베팅을 현재-정보 추론기한테 대신 시키면, 결과물은 베팅이 아니라 "현재 정보의 요약을 매수/매도 문장으로 포장한 것"이 돼요. 확신의 문체는 있는데 확신의 근거인 신념이 없는 거죠.
더 실용적인 문제는 만들다가 직접 목격했어요. 프로토타입에 같은 포트폴리오, 같은 데이터를 주고 같은 질문을 두 번 던졌는데 답이 달랐어요. 오늘은 매수라던 게 내일은 관망이라고 했어요. 그 사이에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데요. 사람의 변심에는 이유가 있는데, 이건 이유 없는 흔들림이에요. 이걸 보고 나니 흔들리는 판단 위에 돈을 얹을 수는 없겠다 싶었어요.
퀀트가 먼저 밟은 함정이에요
물론 수익을 내는 에이전트가 없진 않아요. 근데 극소수예요. 그리고 이 그림은 퀀트가 오래 겪어온 함정과 닮았어요.
오해하지 않게 정확히 한정할게요. 퀀트 자체가 함정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잘하는 퀀트 펀드는 실제로 돈을 벌어요. 함정은 이거예요. 과거와 현재 데이터에 잘 맞게 최적화한 규칙을, 미래에 대한 베팅에 자동으로 적용하는 것. 그 규칙이 미래에도 통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대부분은 특정 국면에서만 통하거나 그냥 과최적화예요. 백테스트는 예쁜데 실전에선 녹는다는 그 이야기죠. 저금리 국면에서 학습된 규칙은 금리가 방향을 바꾸는 순간 소리 없이 무너지고, 무너졌다는 사실조차 한참 뒤에 알게 돼요.
LLM 에이전트는 같은 함정을 더 나쁜 조건에서 밟아요. 퀀트의 규칙은 최소한 명시적이라 언제 어긋났는지 사후에라도 추적할 수 있어요. LLM의 "규칙"은 가중치 속 어딘가에 있어서 왜 그 판단이 나왔는지 본인도 모르고, 재현도 안 돼요. 게다가 산수까지 흔들려요. 복리 계산을 시키면 그때그때 다른 숫자를 내놓는 기계한테 포트폴리오를 맡기는 셈이에요.
방아쇠는 사람이 당겨요
그래서 AI가 투자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 역할은 결정 그 자체가 아니라고 봤어요.
흩어진 정보를 모아서 인간이 받아먹기 좋은 형태로 정리해주는 것. 판단의 재료를 정확하고 일관되게 깔아주는 것. 내 포트폴리오가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 어디에 쏠려 있는지, 이 가정을 넣으면 어떤 분포가 나오는지요. 여기까지가 AI의 일이고, 그 재료 위에서 미래를 믿고 방아쇠를 당기는 건 사람의 일이에요.
이 분업이 겸손해 보여도 실제로는 꽤 강력해요. 사람이 투자에서 실수하는 지점의 상당수는 신념이 아니라 재료 쪽이거든요. 분산돼 있다고 믿었는데 아니었다든가, 평균 수익률과 내 손에 남는 복리 수익률을 혼동했다든가요. 재료가 정확하면 신념은 제 몫을 할 수 있어요. 재료가 틀리면 아무리 좋은 신념도 틀린 지도 위를 걷는 거예요.
이 모델이 지금 기술 수준에선 투자에 제일 맞는다고 생각했고, 그 모델대로 도구를 만들었어요. 이름은 Opula예요.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 설계 결정 두 개
Opula는 Claude나 ChatGPT에 붙여 쓰는 호스티드 MCP 커넥터예요. 여기서 내린 설계 결정 두 개가 위 생각을 그대로 반영해요.
하나, 숫자 계산을 LLM한테 안 맡겼어요. 그때그때 산수시키면 답이 매번 흔들리니까, 숫자는 서버가 같은 규칙으로 계산하고 AI는 그걸 말로 풀어주게만 나눴어요. 그래서 "언제 3억 도달?"에 날짜 하나를 지어내는 대신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으로 확률과 퍼센타일 범위를 돌려줘요. 정직한 답은 날짜가 아니라 분포라서요. 그리고 시뮬레이션의 수익률·변동성 가정은 Opula가 대신 채워주지 않고 사용자가 고른 값을 그대로 적어요. 미래에 대한 가정은 신념의 영역이고, 신념은 사용자 것이니까요.
둘, 계좌를 연동하지 않아요. Plaid 같은 집계업체 대신 "테슬라 10주 샀어"처럼 말로 기록해요. 덕분에 은행 피드가 원래 못 보는 자산, 이를테면 전세보증금 같은 것까지 한 장부에 들어오고, ETF도 look-through로 풀어서 실효 노출을 보여줘요. "분산 잘 돼 있지" 싶던 게 알고 보면 AAPL 26%인 경우가 꽤 많아요.
눈치채셨겠지만 둘 다 "결정을 잘 내리는 AI"가 아니라 "재료를 정확하게 까는 AI"를 위한 결정이에요. Opula는 사라 팔라는 말을 하지 않아요. 자문이 아니라 진단 도구예요. 진단이 정확하면, 결정은 그걸 읽는 사람이 자기 신념으로 내리면 돼요.
FAQ
AI 투자 에이전트로 수익 내는 사람도 있지 않나요?
있어요. 극소수예요. 그리고 그 소수가 왜 수익을 냈는지, 운인지 실력인지 국면 덕인지 구분하려면 한 국면 이상의 시간이 필요해요. 규칙이 명시적인 퀀트도 이 구분에 수년이 걸리는데, 판단 과정이 불투명한 LLM 에이전트는 더 걸려요.
퀀트를 비판하는 글인가요?
아니에요. 잘하는 퀀트는 돈을 벌어요. 이 글이 한정하는 함정은 "과거 데이터에 최적화한 규칙을 미래 베팅에 자동 적용하는 것"이고, 이건 퀀트 업계 스스로가 가장 경계하는 실패 양식이에요. LLM 에이전트는 그 함정을 규칙의 투명성마저 없이 반복할 위험이 있다는 게 요지예요.
그럼 AI는 투자에 쓸모없다는 건가요?
반대예요. 정보 수집과 정리, 일관된 계산, 쏠림 진단 같은 재료 작업은 AI가 사람보다 잘하고 지치지도 않아요. 맞지 않는 건 딱 하나, 미래에 대한 베팅을 대신 결정하는 역할이에요.
Opula는 매수/매도 추천을 하나요?
안 해요. 포트폴리오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고, 사용자가 가정을 넣으면 그 가정 하에서의 결과 분포를 계산해요. 방아쇠는 항상 사용자가 당겨요.